평소에 책상에 앉아 이것저것 하면서 음악을 즐겨 듣곤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집사람이 제 뒤에 놓여있는 책상에 앉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기 시작하더군요.
이후로 두살박이 아들놈을 재우고는 등을 맞대고 앉아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대로 평소처럼 음악을 틀어놓지 못해 좀이 쑤셨고, 누구보다도 제 심정을 잘 아는 집사람은
미안함에 신경이 쓰였던 거죠. 어느날 그러는 겁니다.
"헤드폰이라도 한번 써봐요~"
비록 손을 놓은지는 10년 가까이 됐지만 인터넷이 발달하기전 피씨통신시절부터 앰프자작의 취미를
즐겨하며 로저스 studio1 스피커의 레퍼런스적인 소리를 기준으로 이것저것 비교청음하는 것을
좋아했던 저로서는 헤드폰은 이어폰과 구분이 안가는 그냥 편의성을 강조한 생활가전 그 이상도 이하
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마누라의 한마디에 발을 들여놓게 된 이 세계는 그야말로 또다른 별천지
더군요. 이곳 저곳 흥미롭게 기웃거리다 헤드폰 클럽과 하스를 알게됐고 이후로는 풀방구리 드나들듯
하루에도 몇차례씩 로그인을 반복하며 그야말로 삼매경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대낮에 직장에서 몰래 빠져나와 용산에서 한시간여에 걸친 비교청음후에 가격대 성능비가 가장
적절한 수준이라는 판단으로 오디오테크니카의 A700을 구입했죠. 그리고 헤드폰 앰프로는 Dr. DAC을
구입했습니다. 어차피 소스는 컴퓨터니까(컴리드 hifi 7.1) 그렇게 고사양의 것들은 필요없을것
같았거든요. 이후로 밤마다 헤드폰을 쓰고는 하스의 이구석 저구석을 돌아다니며 이미 끝나버린 많은
공제와 공구를 보며 왜 진작 이곳을 몰랐던가하는 뼈저린 통한의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집사람은 아차 싶었겠지만...어쩌겠습니까...이미 늦었죠.
최근 하는일이 좀 안정되면서 다시 인두를 잡았었거든요. 모사이트에서 공제한 4766앰프를 만들어
피스에 집어넣는 뻘짓을 좀 했는데 그걸 지켜보는 마누라의 표정이란....흠흠.
(아니, 멀쩡한 스피커를 왜?....왜냐구?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안되쥐~~)
아뭏든 무턱대고 SHHA의 부품공제에 참여해놓고 기판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십수년만에 다시 에칭부터 시작해? 그래도 요즘엔 도구나 재료들이 많이 좋아졌겠지?
하지만 삼십대 중반의 직장인으로서, 두살박이 아들놈을 모시고 마누라를 떠받들고 살아야하는
이땅의 평범한 가장이 다림질을 하며 쪼그리고 앉아 에칭통을 흔들고 있기에는 세상이 그리 녹녹하지
않거든요. 공감하실분 있으실거라 믿습니다. 그러던 차에 고마우신 회원님으로부터 SHHA와 PPA
기판을 양도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때부터는 정신없이 도구 및 악세서리들을 모았습니다. 인터넷이 좋긴 좋더라구요. 특히 이런
취미생활하기에는 인터넷과 택배의 존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하찮은 인두끝
하나 구하려고 해도 세운상가나 장사동을 헤메고 돌아다녔는데....
그렇게 인두부터 시작해서 각종 악세사리등을 터무니 없이 사재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스의 보석같은 각종 정보를 프린트하고 숙독한뒤 드디어 날을 잡아 청계천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십수년전 알지도 못하는 부품이름을 외워 터무니없는 가게에서 머쓱한 표정으로 물어보고 면박을
당하던 시절을 생각하니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청계천 만들어놓은것 보니 시장님이
혹시라도 대통령되면 정말 서울부산 운하만든다고 덤비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구요.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거의 네시간가량을 피곤한지 모르고 헤메고 다녔습니다.
한개살거 두개사고 아니 비슷한거 몇개 더사고, 이러다보니 첨 생각보다 예산은 좀 더 들었지만
돈이 하나도 안아까웠습니다. 나이먹고 다니니 세운상가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도 삥뜯길 걱정 안해도
되는것과 학생~ 비디오 좋은거 있어하는 소리 안듣는거는 정말 좋았다는.....
그렇게 모아온 부품으로 드디어 PPA를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소리를 들어보고 바로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렇게 좋은 소리가 나올줄 알았다면 어쨌거나 물량좀 투입할것을.....데일저항에 오스콘등으로
사용했다면 최소한 심리적인 플러스 알파가 있었을텐데....
솔직히 소리에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그냥 이화저항 썼거든요. (부품정보란에 이화저항 누
님에 대한 어느 회원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아뭏든 광출력을 통한 Dr.DAC의 소리보다 사카의 line-out을 통한 PPA의 소리가 몇수 위였습니다.
거기다 Dr.DAC의 헤드폰 앰프부의 opamp로 사용한 8620을 사카의 프론트 출력으로 옮겨 PPA를
연결한뒤의 차이는 더이상 Dr.DAC의 짹에 해드폰을 연결하고 싶지 않게 만들더군요. (결국 직장으로
방출입니다. 불쌍한....)
흠...주저리주저리 말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간만에 느껴보는 기쁨이 사람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군요.
좀 걱정되기도 합니다. 저말구 집사람이요.
앞으로의 제 행보가 전 이미 보이거든요...
자...그럼...즐거운 음악생활과 자작생활들 하시구요, 조금 쑥스럽지만 저도한번 외쳐봅니다.
"하스 만세!~~"
(기술적인 전문지식은 없지만 적어도 부품구입에 대한것들 정도는 아무리 하찮은 나사하나라도
알려 드리겠습니다. 망설이지 말고 글올리세요~~)
"두살박이 아들놈을 모시고 마누라를 떠받들고 살아야하는 이땅의 평범한 가장이 다림질을 하며 쪼그리고 앉아 에칭통을 흔들고 있기에는 세상이 그리 녹녹하지 않거든요. "
저의 스토리와 어쩜 이렇게 똑같을수가 있단 말입니까? -_-
마눌어른께서 "으미~ 뭣하는 짓이여?" 하고 한마디만 던지시면 멀쩡하던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에혀...
다른것 할일도 많은데... 이것 붙잡고 있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그려.
아뭏던 모든게 공감입니다.
그리고... 멋진 앰프 잘보았습니다. ^^
그런데 케이스가 장난아니게 예쁩니다. 어디서 구입하신 겁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