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free) - 헤드폰 앰프에 대한 자유 게시판 (정치,경제,문화,개인 사생활 ....등은 삭제 조치사항입니다.)
2012.06.13 10:05

막내삼촌의 헤드폰..

조회 수 1729 추천 수 0 댓글 1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에는 노총각이던 막내 삼촌이 함께 사셨죠.


아버지와는 터울이 상당히 컸던 삼촌.. 집안 식구 중 그 누구와도 겸상을 하지 않았다는 초권위적인 할아버지도 늦둥이로 본 삼촌만은 무릎에 앉혀서 밥을 먹였다죠.


나름 국내 굴지의 모 기업 대리였던 삼촌 방에는 신기한게 참 많았습니다. 이런저런 등산장비, 스키장비, 커다란 오디오시스템 등등.. 


저는 언젠가부턴가 하교 후 집에 돌아오면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삼촌 방에 들어가서 어른 남자의 물건들을 구경하곤 했죠.


지금 생각하면 좀 슬픈 이야기지만 말이죠. 나름 넓었던 집에서 엄연히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의 물건 중에 남자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던 물건은 장식장 가득했던 양주콜렉션 밖에 없었으니..


아버지들 화이팅하세요. 각설하고,


삼촌의 소니 티비로 슈퍼볼도 보고 지포라이터도 만지작거리고, 한번은 해외 출장 갔다가 사온 말보로 라이트에 불도 붙여보고.. ㅋ 그런 후에는 모든 물건들을 제자리에 그대로 돌려놓고 제 방으로 돌아가 천역덕스럽게 퇴근하는 삼촌을 맞곤 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좋아했던 물건이 삼촌의 헤드폰이었습니다.


돼지꼬리 케이블이 꽤나 큰 오디오시스템의 헤드폰 단자에 물려 있던 밀폐형 헤드폰. 감히 스피커는 못켜고(어쩌다 켜지만 화들짝 놀라 얼른 헤드폰 단자를 끼곤 했죠) 삼촌 침대에 앉아 그 녀석으로 지금은 누군지도 모른 팝송 CD를 한 삼십분씩 무아지경으로 듣다가 시간이 흐른걸 깨닫고 방에서 나가곤 했죠.


전 밖에서 음악은 헤드폰이 아닌 이어폰으로 듣습니다. 제게 헤드폰이란 집에서 조용히 느긋하게 거치형으로 듣는 물건이죠. 이런 제 스타일을 만든게 어렸을 때 삼촌 방에서의 추억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삼촌이 장가를 가게 되어 독립하게 된 후에도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담배로 말보로 라이트에요.. ㅎㅎ)


지금도 사촌들과 어른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삼촌. 겨울마다 모 스키장에 불쑥 찾아가면 만날 수 있는, 집안 어른이라기보다는 저와 터울 많이 나는 형님 같은 소중한 분입니다. 아직도 작은아버지라는 호칭은 절대 안나오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지금은 진공관 앰프와 빈티지 스피커를 즐기시더군요.


나이 서른을 넘어 서서히 노총각이 되어가는 지금, 호젓하게 헤드폰으로 음감할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곤 합니다. 내가 그때 삼촌 나이가 되었구나...하면서 말이죠. 어쩌면 제가 헤드폰앰프를 자작하는 이유는, 언제까지나 어른이 되고 싶은 어린 아이로 남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죠..

 

  • ?
    양영모 2012.06.13 12:59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살죠.

  • ?
    전일도 2012.06.13 21:04

    ㅎㅎ 추억이 쌓여갈 수록 추억에 더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 ?
    정형영 2012.06.13 15:45

    저도 비슷하기는 한데

    고등학교 시절 상표 없는 헤드폰이 아직도 그립습니다.

    그나마 쌀국에서 만들었다는 글만 써있을뿐 상표나 기타 족보를 알수 있는 부분이 없었지만

    소리만큼은 아직도 그이상가는 헤드폰을 들어본적이 없는것 같습니다.

    언제인지 알수 없게 없어져 버렸기는 한데 아직도 그 소리가 그립기도 합니다.

    밀폐형이라는 구조 덕분에 헤비메탈은 원없이 들었던것 같습니다...

     

  • ?
    전일도 2012.06.13 21:25

    저도 그때 그 소리가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스피커와 헤드폰은 몰입도가 다른 것 같아요. 세상과 차단되는 느낌이 있죠..

  • ?
    박은서 2012.06.13 21:46

    미래에 드실 것을 쌓아가시는 시기신가 봅니다.


    전 음악듣는 것을 좋아하고, 계속 모으다 보니, 어느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를 처음 듣던 때를 기억하게 되더군요. 


    매우 간접적이고 비선형(?)적인 기억재생의 시동어의 역할을 하더랍니다. ㅋ 


    그래서 억지로라도, 음악을 듣기 위해 헤드폰과 헤드폰 앰프를 만든다고 항상 주장하고 있습니다.ㄷ ㄷ ㄷ ㄷ 

  • ?
    전일도 2012.06.13 22:46

    98년쯤이었나, 역시 저와 터울이 많이 나는 사촌형이 "그게 음악의 향기라는거야"라고 말했던게 생각나네요. 그때는 고등학생이라 이해는 못하고 그냥 멋있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제가 그때 사촌형 나이가 되니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추억이란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짝수차 고조파왜율이 듬뿍 가미된 진공관 소리같은게 아닌가 합니다. THD는 한없이 나빠지지만 오히려 포근하게 들리는..

  • ?
    김태형 2012.06.13 23:44

    할아버지의 시계라는 음악이 생각이 나네요. 

    어디에 있더라~~

  • ?
    전일도 2012.06.14 13:05

    방금 찾아서 들어봤는데 참 좋은 곡이네요.. ^^

  • ?
    정원경 2012.06.15 11:24

    저는 어릴 때 헤드폰 같은게 굴러다녀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적극적으로 앰프를 만들고 헤드폰을 구입해서 듣고 있으니...

     

    사람 취향이라는게 참 변화가 심하고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 같습니다.^^

  • ?
    전일도 2012.06.16 08:03

    저도 보딩과 자전거가 그랬지요. 지금은 새 보드 사면 껴안고 잡니다.. ;;;;;


    앞으로도 어떤 재밋는 것들이 있을지 기대하는 것도 인생 재미인 것 같습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이름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최근 수정일 최종 글 아이디 추천 수
3073 유문구 만들어 본 IC인티앰프입니다. 5 file 유문구 2014.07.24 2801 2014.07.30 2014.07.30(by 하스팡) nezyx 0
3072 김상록 만들어 보고 있는것... 32 file 김상록 2012.03.29 1743 2012.03.30 2012.03.30(by 김지환(muderstone)) ksr0757 1
3071 박용민 만들라는 앰프는 안 만들고... 7 file 박용민 2011.05.27 1205 2011.05.27 2011.05.27 ekdrms 0
3070 김명섭 만들라는 길모어는 안 만들고 장난치고 있습니다... 4 file 김명섭 2013.01.13 2737 2013.01.14 2013.01.14(by 김나라) sopoi2 0
3069 임석현 만들고 있는 헤드폰 앰프들.. 11 임석현 2011.12.22 1587 2011.12.22 2011.12.22(by 홍성용) w0707 1
3068 신정섭 만들고 있는 Hybrid Amp. 7 file 신정섭 2004.12.21 1148 2004.12.21 2004.12.21 sijosae 0
3067 최성남 만들고 있는 Combo 384를 위한 PCM5102A 입니다. 3 file 최성남 2013.04.15 3259 2013.04.15 2013.04.15(by 이복열) semter 0
3066 신동석 만들고 있는 Buffer 들 ... 5 file 신동석 2003.06.11 1137 2003.06.11 2003.06.11 becool63 0
3065 조광옥 만들고 공개 안하기......+기타이펙터 자작? 조광옥 2004.06.24 1760 2004.06.24   nonamedmwr 0
3064 엄수호 만들 것도 몇 개 있고 수리 할 것도 있고.... 7 엄수호 2013.03.03 1781 2013.03.04 2013.03.04(by 정형영) cl1992 0
3063 이혁재 만드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13 이혁재 2004.08.02 1342 2004.08.02 2004.08.02 jazz2250 0
3062 손창원 만능기판용 템플릿 11 file 손창원 2003.09.08 1569 2003.09.08 2003.09.08 sendbox 0
3061 김동현 만능기판에 배선 9 김동현 2010.12.12 2087 2010.12.12 2010.12.12 rodian 0
3060 정원경 만능기판 불량입니다...ㅜㅜ 2 정원경 2010.05.08 1461 2010.05.08 2010.05.08 won43113 0
3059 위지황 만능기판 동박판이 납흡입기를 쓰게되면 잘 벗겨지나요? 4 위지황(snoopy2080) 2014.10.18 2842 2014.10.30 2014.10.30(by 김경진(musician0913)) snoopy2080 0
3058 박상민 만능기판 그리기 좋은 프로그램이네요. 7 박상민(earthnciel) 2014.07.03 11864 2014.09.14 2014.09.14(by 임태형(bcn5186)) earthnciel 0
3057 박명선 막헤드폰이 좋네요.. ㅎㅎ 5 박명선 2011.07.02 1340 2011.07.02 2011.07.02 kelapa 0
» 전일도 막내삼촌의 헤드폰.. 10 전일도 2012.06.13 1729 2012.06.16 2012.06.16(by 전일도) ryanjun 0
3055 안은상 막귀황금귀 테스트에요.. ^^; 3 안은상 2003.08.01 1269 2003.08.01 2003.08.01 0
3054 서상민 막귀화 프로젝트??!?? 2 서상민 2008.07.06 1325 2008.07.06 2008.07.06 tjtkdalszz 0
Board Pagination Prev 1 ... 194 195 196 197 198 199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 355 Next
/ 355
CLOSE
47172 5936900/ 오늘어제 전체     210580 79204787/ 오늘어제 전체 페이지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