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자작의 윤리?

by 이영도 posted Sep 1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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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명 헤드폰 앰프 자작 사이트인 H에서 씁쓰레한 일이 생겼더군요.

얼마전에 새로 만들어져서 요즘 잘나가는 S앰프가 있는데, 이 앰프의 오리지날 개발팀 중의 1명인 R씨가 손털고 떠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앰프에 대한 글들은 초기부터 계속 읽어왔었습니다만, 이렇게 될지는 몰랐지요.

이야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 R씨를 포함한 3명의 개발팀이 S앰프의 회로를 고안해내게 됩니다. 개발팀은 이 앰프의 회로와 초기 제작품을 H사이트에 소개하게 되고,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 개발팀은 옵션을 다양하게 하고, 질문과 조언을 통해서 회로를 개선해 나갑니다. 초기 회로를 이용해서 자작하는 사용자들이 나타나고, 앰프는 잘 동작했습니다.

- 이때 D라는 사람이 나타나 PCB를 제작한다고 말합니다. 개발팀은 PCB를 검토하기 위해서 D에게 PCB를 요청합니다.

- PCB는 잘 동작했지만, 개발자팀들은 좀 더 개선하기를 원했습니다. 개발팀은 아직 완성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완성단계로 들어가려고 노력합니다.

- 한편 D의 PCB가 공개되자 사람들은 이 앰프를 만들기위해서 안달이 나버렸습니다.

- D는 나름대로 PCB를 재구성한 다음에, 공동구매에 나섰습니다. 이후 백여장의 PCB가 풀렸습니다.

- 개발팀은 계속 개선에 나섭니다.

- D는 2차 공동구매에 나섭니다. 이와 함께 개발자 R씨가 관여했던 또 다른 앰프인 K의 공동구매 의사를 타진합니다.

- 이 시점에서 R씨는 S앰프에게서 손털고 떠나겠다는 선언을 하게 됩니다.

- 일부는 R씨의 선언에 동조하지만, 상당수는 "성질 죽여라" 혹은 "너도 PCB사면 되잖아" 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R의 의견 표명이 끝났다고 생각되자 관리자 C씨는 R씨의 뜨레드를 닫아버립니다.

이게 지금까지의 대략적인 상황입니다.

인터넷은 개방된 장소이므로, 개발팀이 회로를 공개한 이상 모든 사람들은 그 회로를 이용할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PCB를 제조할수도 있겠지요. 문제는 개발팀이 디자인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는데도, 개발팀이 아닌 사람이 공동구매로 PCB를 풀어버린데 있습니다. 누가 중간에 나타나서 북치고 장구쳐버린 것이고,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꼴이 났습니다.

개발자에게 있어 회로는 마치 자식과도 같은 것인데, 이런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R씨는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고심끝에 손털겠다는 선언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의 떨떨한 반응, 특히 "너도 PCB하나 사면 되잖아" 라는 반응은, R씨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을 것 같습니다.

R씨의 선언에 상관없이, D는 계속 PCB를 판매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PCB를 살것이고, 그것이 동작하는 이상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개발팀은 떨뜨름 할 것이고, R씨라는 걸출한 개발자는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은 그 개발팀이 앞으로 개발할 다양한 앰프를 접할 기회는 사라져버린다는 뜻이겠지요.

이걸 보면서,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것이 참... 앞을 못보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법적인 문제는 없으니까 다 괜찮은 것이고, 사람들이 원하기만 하면 다 되는 걸까요?

여기 하스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앰프에 대한 욕구에 앞서, 사람에 대한 존중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