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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3 10:05

막내삼촌의 헤드폰..

조회 수 1730 추천 수 0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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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에는 노총각이던 막내 삼촌이 함께 사셨죠.


아버지와는 터울이 상당히 컸던 삼촌.. 집안 식구 중 그 누구와도 겸상을 하지 않았다는 초권위적인 할아버지도 늦둥이로 본 삼촌만은 무릎에 앉혀서 밥을 먹였다죠.


나름 국내 굴지의 모 기업 대리였던 삼촌 방에는 신기한게 참 많았습니다. 이런저런 등산장비, 스키장비, 커다란 오디오시스템 등등.. 


저는 언젠가부턴가 하교 후 집에 돌아오면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삼촌 방에 들어가서 어른 남자의 물건들을 구경하곤 했죠.


지금 생각하면 좀 슬픈 이야기지만 말이죠. 나름 넓었던 집에서 엄연히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의 물건 중에 남자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던 물건은 장식장 가득했던 양주콜렉션 밖에 없었으니..


아버지들 화이팅하세요. 각설하고,


삼촌의 소니 티비로 슈퍼볼도 보고 지포라이터도 만지작거리고, 한번은 해외 출장 갔다가 사온 말보로 라이트에 불도 붙여보고.. ㅋ 그런 후에는 모든 물건들을 제자리에 그대로 돌려놓고 제 방으로 돌아가 천역덕스럽게 퇴근하는 삼촌을 맞곤 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좋아했던 물건이 삼촌의 헤드폰이었습니다.


돼지꼬리 케이블이 꽤나 큰 오디오시스템의 헤드폰 단자에 물려 있던 밀폐형 헤드폰. 감히 스피커는 못켜고(어쩌다 켜지만 화들짝 놀라 얼른 헤드폰 단자를 끼곤 했죠) 삼촌 침대에 앉아 그 녀석으로 지금은 누군지도 모른 팝송 CD를 한 삼십분씩 무아지경으로 듣다가 시간이 흐른걸 깨닫고 방에서 나가곤 했죠.


전 밖에서 음악은 헤드폰이 아닌 이어폰으로 듣습니다. 제게 헤드폰이란 집에서 조용히 느긋하게 거치형으로 듣는 물건이죠. 이런 제 스타일을 만든게 어렸을 때 삼촌 방에서의 추억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삼촌이 장가를 가게 되어 독립하게 된 후에도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담배로 말보로 라이트에요.. ㅎㅎ)


지금도 사촌들과 어른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삼촌. 겨울마다 모 스키장에 불쑥 찾아가면 만날 수 있는, 집안 어른이라기보다는 저와 터울 많이 나는 형님 같은 소중한 분입니다. 아직도 작은아버지라는 호칭은 절대 안나오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지금은 진공관 앰프와 빈티지 스피커를 즐기시더군요.


나이 서른을 넘어 서서히 노총각이 되어가는 지금, 호젓하게 헤드폰으로 음감할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곤 합니다. 내가 그때 삼촌 나이가 되었구나...하면서 말이죠. 어쩌면 제가 헤드폰앰프를 자작하는 이유는, 언제까지나 어른이 되고 싶은 어린 아이로 남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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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영모 2012.06.13 12:59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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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일도 2012.06.13 21:04

    ㅎㅎ 추억이 쌓여갈 수록 추억에 더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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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형영 2012.06.13 15:45

    저도 비슷하기는 한데

    고등학교 시절 상표 없는 헤드폰이 아직도 그립습니다.

    그나마 쌀국에서 만들었다는 글만 써있을뿐 상표나 기타 족보를 알수 있는 부분이 없었지만

    소리만큼은 아직도 그이상가는 헤드폰을 들어본적이 없는것 같습니다.

    언제인지 알수 없게 없어져 버렸기는 한데 아직도 그 소리가 그립기도 합니다.

    밀폐형이라는 구조 덕분에 헤비메탈은 원없이 들었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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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일도 2012.06.13 21:25

    저도 그때 그 소리가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스피커와 헤드폰은 몰입도가 다른 것 같아요. 세상과 차단되는 느낌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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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서 2012.06.13 21:46

    미래에 드실 것을 쌓아가시는 시기신가 봅니다.


    전 음악듣는 것을 좋아하고, 계속 모으다 보니, 어느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를 처음 듣던 때를 기억하게 되더군요. 


    매우 간접적이고 비선형(?)적인 기억재생의 시동어의 역할을 하더랍니다. ㅋ 


    그래서 억지로라도, 음악을 듣기 위해 헤드폰과 헤드폰 앰프를 만든다고 항상 주장하고 있습니다.ㄷ ㄷ ㄷ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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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일도 2012.06.13 22:46

    98년쯤이었나, 역시 저와 터울이 많이 나는 사촌형이 "그게 음악의 향기라는거야"라고 말했던게 생각나네요. 그때는 고등학생이라 이해는 못하고 그냥 멋있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제가 그때 사촌형 나이가 되니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추억이란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짝수차 고조파왜율이 듬뿍 가미된 진공관 소리같은게 아닌가 합니다. THD는 한없이 나빠지지만 오히려 포근하게 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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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형 2012.06.13 23:44

    할아버지의 시계라는 음악이 생각이 나네요. 

    어디에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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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일도 2012.06.14 13:05

    방금 찾아서 들어봤는데 참 좋은 곡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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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경 2012.06.15 11:24

    저는 어릴 때 헤드폰 같은게 굴러다녀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적극적으로 앰프를 만들고 헤드폰을 구입해서 듣고 있으니...

     

    사람 취향이라는게 참 변화가 심하고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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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일도 2012.06.16 08:03

    저도 보딩과 자전거가 그랬지요. 지금은 새 보드 사면 껴안고 잡니다.. ;;;;;


    앞으로도 어떤 재밋는 것들이 있을지 기대하는 것도 인생 재미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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